클라이밍 중독의 시작

클라이밍 중독

초록색 난이도 문제를 깨지못한 채로 집에 돌아온 나는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홀드들이 그리웠다.

클라이밍 중독에 걸린채로 문턱에 걸려있는 애꿎은 턱걸이 봉을 잡고

클라이밍 하는 것처럼 책상과 문에 발을 이리저리 올렸다.

헛짓거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제정신을 겨우 붙잡았지만

클라이밍을 하고싶은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역시 ‘사랑은 열린문’이라는 걸 떠올린 나는 방문을 열고 아껴놓았던 설날 세벳돈을 꺼낸 후 클라이밍 한달권을 끊기로 결심했다.

한달권 11만원….사실 다른 클라이밍장에 비해 싼편이였지만 대학생이던 나에게는 맛있는 밥 9끼 정도를 포기한 귀한 돈이였다.

이틀 후, 야수같은 마음으로 초록색난이도를 도전하기 위해서 한달권을 끊고 위풍당당하게 클라이밍장에 들어왔다.

뭔가 바뀐것 같은 벽들이 눈에 띄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깨지 못했던 초록색 난이도 벽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초록색 난이도의 루트는 “팔의 힘이 빠져서 못깻을꺼야” 라고 생각하던

이틀 전 분석한 나의 실패원인을 무자비하게 반박했고 20번의 시도에도 나의 성공가능성은 나아짐이 전혀없었다.

수많은 시도끝에 무참히 실패한 나는 자존감이 구멍뚫린 항아리에서 물새는 것마냥 콸콸 빠져버렸다.

클라이밍 중독

나는 좌절한 채로 바닥에 앉아 같이 온 동료들의 완등 스토리를 실시간으로 구경했다.

슬픈 눈으로 나는 왜 할수없을까…라는 비생산적인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아는 형이 다죽어가는 나를 보고 안쓰러웠는지 초록색 난이도 루트의 해답 동작들을 알려주었다.

딱히 본다고 바로 따라할 수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동작들을 봤고 실행에 옮겼다.

그 동작 그대로 한 15번 쯤 도전했을 쯤에 드디어 탑홀드를 손에 만졌다. 아 깻다는 건 아니고 정말 손으로 만져만봤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감격에 벅차올라버렸고,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과 악수를 한것 처럼 손을 씻고싶지않은 충동까지 들었다.

“하..한번.. 만져봤으니…다음엔 더 오래 만질 수 있을꺼야” 라는

스토리를 모르면 이상하게 볼 수 있는 말을 마음에 품은 채로 다시 수많은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한 3시간쯤 지났나..나의 팔과 손이 합심해서 나한테 살려달라고 싹싹 빌때 쯤 같이 온 동료들이 집에 가자고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깨기 전까지 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지만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말 함께 5분안에 집에 갈것이라는 소식을 동료들에게 통보 받았다.

그래도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수없었는지 동료들은 나에게 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나는 충분하게 팔을 풀어주고 거듭된 심호흡으로 마음의 준비를 한 후 벽위로 발을 딛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손에 초크를 묻히고 경건한 마음으로 스타트 홀드를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지금 생각하면 허접하기 짝이없는 이상한 자세였지만 표정만은 호랑이를 앞에 둔 착호갑사의 표정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는 해맸던 중간 부분을 이제는 대학입시식 반복학습으로 외워 무사히 넘긴 채로 무수히 실패하던 그 구간까지 도달했다.

나는 미친듯이 떨리는 팔을 뒤로한채 멀리있는 홀드를 잡아야 했고 누가봐도 나의 마지막 시도는 실패에 가까워진 그때!

뒤에서 허리를 왼쪽으로 꺾어서 무게중심을 넘겨! 라는 말이 들려왔다.

팔의 힘이 거의 빠져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였던 나는 마지막으로 기적을 믿고 힘을 내어 허리를 왼쪽으로 꺽었고

마침내 멀리있는 홀드를 잡아 탑홀드에 두손이 도달했다!

나는 아직도 그 감격적이고 신기했던 순간을 1분1초도 잊지못하고 그대로 기억한다.

겨우 초록색 난이도 깨고 뭘 그렇게 유난일까 싶지만, 거의 60번의 도전 끝에 이뤄낸 성공은 정말 꿀처럼 달았다.

그 순간은 내가 클라이밍 중독에 걸린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이다.

나는 동료들의 무수한 환호와 격려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고 세상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날부터 나의 인스타와 유투브 릴스들은 클라이밍으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나의 클라이밍 중독이 시작되었다.

다음화 계속 > 다음화 제목[박살나 버린 나의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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